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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빅 / 동거

이방人 2015. 7. 30. 17:33




동거



1

요즘 같이 사는 남자가 생겼다.


나와 함께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거나 항상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 다반사였고 나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렇지 않다. 이 남자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로 나는 너무 심심하다. 그래서 나는 노래를 부른다.


이 남자와 살면서 내 일상이 얼마나 단조로워졌는지 모른다. 이 사람은 룸메이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처음 왔을 때 반갑다고 인사를 해도 아무 대답이 없었고 이젠 아예 나를 무시한다. 내가 안 보여? 왜? 내가 먼저 이 집에 살고 있었는데? 내 덕에 월세도 싸게 잘 들어왔잖아.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어쨌든 다시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대학생인데 생긴 건 멀쩡하다. 아니 오히려 잘 생겼다. 첫 인상은 좋았다.


전공서적이랑 지갑 안 주민등록증에 적힌 이름이 최승현이라고 되어 있다. 전공책 제목들이 반도체 어쩌구저쩌구 하는 걸 보면 공대생이지 않을까? 머리도 좋은 것 같은데 생각하는 꼬라지는 어찌나 머저리 같은지 며칠 전에는 쥐덫을 놓았다. 물론 내가 조금 장난을 치긴 했다. 그가 늘 쓰고 있는 큼직한 안경이 싫었기 때문에. 어찌되었건 나는 쥐가 아니야. 나는 쥐가 정말 싫어. 나는 고양이가 좋아.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우리집에는 쥐가 없어! 그런데 이 멍청한 놈은 왜 철물점에서 고양이도 잡을 만큼 큰 쥐덫을 몇 개나 사다가 구석에 놓아두는 건지 모르겠다. 쥐가 없대도 그러네! 몇번이나 귓가에 대고 얘기를 해도 통 알아먹지를 못한다. 나를 아주 없는 취급을 한다. 정말 큰 고민이다. 나한테 왜 이래? 그래서 나는 오늘, 아주 특별한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그가 겁먹은 것을 보고 싶다. 즐거울 것 같다.



2

친구들이 영 우리집엘 오려 하지 않는다. 귀신 나오는 집이라며 가까이 하려 하지도 않는데 그거 다 개소리다. 이렇게 내가 뻔히 이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귀신 비슷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만 조금 찝찝한 것은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꿈에 처음 보는 남자가 나온다는 것 뿐이다.

몸이 마른 편이고 생긴 것도 그냥저냥 귀엽다. 뭔가 사람을 잡아끄는 외모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첫 날에는 몹시 반가운 듯 무어라 자기소개를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이 권... 뭐더라? 사실 성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권씨인지 김씨인지 알 게 뭐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둘째 날엔 뭔가 잔뜩 토라져 알아들을 수 없는 투정을 부린다. 그 다음 날에는 내 애인이라도 된 마냥 다정하더니 또 다음 날에는 미친 듯이 짜증을 부린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다. 얼마나 생생하게 짜증을 냈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깨어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그 다음다음 날부터는 집안의 자잘한 물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컵부터 시작하여 옷, 양말, 속옷까지. 제자리를 지키는 물건은 몇 없는데 없어진 것도 없다.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늘 머리맡에 두곤 했던 안경이 어딘가로 사라져 있곤 했다. 그래서 안그래도 바쁜 아침에 안경을 찾는 수고까지 곁들여야 했다. 아침 수업에 지각할 순 없었기 때문에 내 아침은 더욱 촉박해졌다. 안경을 안 쓰기엔 시력이 너무 나빠서 안 쓸 수도 없었다. 안경이 숨겨져 있는 곳이 그나마 거기서 거기라 겨우 시간을 맞춰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계속해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동요. 


그저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며칠 지켜보다가 쥐가 있는 것 같아 쥐덫을 사다 놓았다. 그리고 그 날은 그 남자가 우리집엔 쥐가 없다고,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느냐며 고래고래 화를 냈다. 내가 쥐덫을 놓은 건 어떻게 알았지? 생각하다보니 복잡해졌다. 잠이나 자야겠다.



3

잠에서 깬 승현은 이불 위에 새빨간 털이 몇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잠시 요즘 쥐는 털이 빨갛나 하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집어들자마자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머리카락은 그것의 주인이 자신과 한 베개를 쓴 듯 그 위와, 이불 위에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순간 이 집을 귀신 사는 집이라고 하는 것을 떠올렸다. 순간 섬뜩했지만 승현이 생각하는 귀신은 항상 검은 머리였다. 그리고 긴 머리였다. 또 붉은색은 귀신이 싫어하는 색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 이 집에 들어와 잠을 자고 간 것이라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놀랍게도 주변 순찰을 강화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리고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형 경찰에 신고하셨다면서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


친한 후배의 전화였다. 그리고, 옆에서 병신새끼 하고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너 지금 누구랑 있어?"


-야 이 븅신새끼야.


"집에 혼자 있는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승현은 전화를 끊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웃집의 소리도 아니다. 방금 전의 것은,


-이제 들려?

야, 안 들려?


약간의 텀을 두고 소리가 이어졌다. 그때서야 승현은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소리라고 느꼈다. 꿈속 그 남자였다.


-우

   리

     집

       에

           왜

          왔

         니

            왜

           왔

             니

            왜...


그리고 끊길 듯 말 듯 주변을 맴돌며 이어지는 동요 가락.


-...꽃 찾으러 왔단다!


그 순간 승현은 소스라치게 놀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자신을 무언가 무게감 있는 것이 뒤로 밀어 넘어뜨렸기 때문이다. 곧이어 이어지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언뜻 스쳐 지나가는 새빨간 머리카락이 그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색은 아까 전 베개 위에 흩어져 있던 것과 꼭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집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순간 소름이 끼쳐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귓가에 키득이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뭐?


-안경 쓰지 마. 보기 싫단 말이야.


딸깍, 하고 들어올려진 안경이 뚜둑 하고 다리가 끊어졌다. 이게 무슨...!


-왜 그렇게 놀라? 나 데리고 살 거라며?


승현은 그 물음에 답을 하려 했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기억, 안 나?


목에 힘이 가해짐과 동시에 그제서야 승현은 몸 위에 타고 앉은 사람의 형상을 볼 수 있었다.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역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빨간색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아까의 그 색이었다. 비를 맞듯이 머리카락이 젖었다. 투둑, 하고 물이 떨어졌다. 기도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는 종교가 없었다.


-내 이름은 권지용이야. 보여? 


그는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중간중간 실없이 키득거리며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그가 입을 맞춰왔다.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싫어. 


-왜 싫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쉴새없이 중얼거리며 지용은 승현의 목을 졸랐다. 승현은 더 이상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개

   나

     리

       노

         란

         꽃그늘

        아래

         가

           지

             런

              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

                                  나


그리고 그 와중에도 노래를 불렀다.





4


"그 집이 귀신 나온다 그래서 그렇게 싼 거래요. 솔직히 그 정도 집이 그렇게 쌀 리가 없잖아요?"


그는 말 없이 잔에 소주를 따랐다.


"예전부터 돌던 소문인데 그 귀신이 예대를 다녔었대요. 그 집에 살고 있었고"

"그래?"


"무슨 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늦은 저녁에 치였다나 봐요. 비 내리는 날에."


승현은 말 없이 듣기만 하는 중이었다.


"근데 자기가 죽은 줄 모르고 이 근처를 계속 돌아다닌대요."


"그런 게 어딨어?"

"피해 본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는데요? 거의 다 말 안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 거 있으면 내가 데리고 산다. 혼자 얼마나 외롭겠어?"


"형 미쳤어요?"

"근데 그 귀신 예쁘대?"

"내가 말을 말아야지..."